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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2000년생의 첫 소설이 희망으로만 점철됐다면, 그것이야말로 부조리한 것 아닌가.
싱어송라이터 한로로(25·한지수)의 첫 소설 ‘자몽 살구 클럽’은 그럼에도 살고자 하는 10대들의 ‘생존법’을 그린다.
‘입춘’을 지나 청춘이 된 이들은 “슬프게도 반짝이는 소멸 직전의 별처럼”(한로로 두 번째 EP ‘집’ 중 ‘생존법’ 중) 사랑받고자 하지만 그런 마음은 세상으로부터 계속 미끄러진다.
소하, 태수, 유민, 보현이가 꾸린 학내 ‘자몽 살구 클럽’은 세상에 대한 이들의 마지막 외침이다. 단단이 여문 자몽, 살구처럼 상처가 아물어 가는 그곳은 험난한 인생의 도피처가 끝내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멸종된 청춘의 울음이 음악처럼 새어나오는 유일한 곳이다. 학생회장인 태수가 몇 번의 자살을 시도한 후 만든 클럽은 그렇게 노래가 된다.
세상이라는 오선지엔 그러나 장조의 매끈한 음표만 있지 않다. 여러 차례 자살 시도가 남긴 주저흔은 삶의 날카로운 흔적과 같은데 소하가 피흘리면서 뛸 수밖에 없는 회한의 세상은 단조의 상처 문양 투성이다.
“쨍쨍을 넘어선 짱짱”인 햇살이 가득한 여름 날의 배경인 소설에서 청춘들은 가장 더운 대서(大暑)에 헉헉되면서 뛰고 또 뛴다.
“세계의 정답을 해석할 수 없는 나는 / 어디로 어디로 어디로 / 모든 걸 버리고 홀로 도망쳐온 곳엔 /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한로로 세 번째 EP ‘자몽 살구 클럽’의 선공개곡 ‘도망’ 중)라며 절박하게 도망친다.
‘끝없는 추락은 아프지 않단 걸’로 요약되는 한로로 ‘도망’의 정서는 그녀의 아이러니한 화법의 증상 중 하나다. 단호한 절망 속에서 뭉근한 희망이 섞여드는 대목들을 발견한 순간, 우리는 각자 도망이 아닌 함께 전진한다. 그렇게 우리는 주체성을 얻는다.
“비틀거리다 깨지는 두려움은 / 언젠간 설렘으로 바뀔 거란 걸 난 알아 / 이마 위 상처는 청춘의 징표 / 우리는 서로의 좋은 반창고 / 상처투성이의 손을 맞잡고 / 다시 비틀비틀 짝짜꿍, 비틀비틀 짝짜꿍”이라고 노래하는 한로로의 세 번째 디지털 싱글 ‘비틀비틀 짝짜꿍'(2022)처럼.
건국대 국문과 출신인 한로로는 윤슬 같은 유려한 문장을 남용하지 않고, 적절하게 섞어 쓰면서 개별적인 10대들의 이야기를 남녀노소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치환하는, 소설 쓰기의 본령을 보여준다. 문단 바깥에서 소설과 음악의 변용(變容), 변주를 통해 도망치거나 추락하는 자들을 대신해 절실한 변명을 해준다. 이 소설은 한로로가 오는 8월4일 발매하는 동명의 세 번째 EP의 세계를 확장하며 공감대 폭을 넓힌다.
‘내일에서 온 티켓’ ‘용의자’ ‘갈림길’ ‘0+0’ ‘_에게’ ‘시간을 달리네’ ‘도망’이라는 공개된 일곱 개의 트랙리스트 제목만 봐도 앨범과 소설이 얼마나 유기적인지 파악할 수 있다.
‘자몽 살구 클럽’은 교보문고, 알라딘 등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대세 밴드 ‘실리카겔’ 보컬 김한주 등이 ‘자몽 살구 클럽’을 읽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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